CBDC 파일럿의 핵심 설계 : ‘기관용’과 ‘예금 토큰’의 결합

한국은행은 2025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7개 시중은행(KB국민 · 신한 · 하나 · 우리 · NH농협 · IBK기업 · BNK부산)과 함께 ‘디지털 테스트 프로젝트 한강’을 가동한다. 이번 실험에서 실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금융기관 간 결제전용(wholesale) 으로만 쓰이고, 소비자에게는 은행이 CBDC를 담보로 발행한 ‘예금 토큰(tokenised deposits)’ 이 제공된다.
참가 인원은 최대 10만 명, 1인당 보유 한도 100만 원·총 결제 한도 500만 원으로 제한된다. 결제는 은행 앱의 QR코드로 진행되고, 편의점·카페·온라인몰 등 200여 개 가맹점이 참여한다. CBDC를 직접 배포하지 않으면서도, 분산원장 기반 ‘실시간 정산’과 중개 수수료 절감 효과를 검증하려는 목적이다. 연합뉴스매일경제
예금 토큰의 구조와 소비자 경험 : ‘현금 같은 예금’에서 ‘프로그래머블 머니’까지
예금 토큰은 결제 편의성을 기존 요구불예금과 동일하게 설계해 UI/UX 장벽을 최소화했다. 동시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얹어 ‘목적형 지급(디지털 바우처)’을 구현할 수 있어 소상공인 지원금이나 지역화폐의 자동 정산 시나리오도 테스트된다.
금융소비자는 은행 예금 → 예금 토큰 → 현금 재전환 과정을 앱에서 실시간으로 수행하며, 토큰 보유량·사용 내역·회수 조건 같은 메타데이터를 투명하게 확인한다. 이는 이용자가 체감하는 디지털 자산의 ‘가시성·추적성’을 높여 불완전 판매·머니론더링 리스크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합뉴스
국내 은행권에 미칠 파급효과 : ‘중개 기능’ 축소 vs ‘신규 수익원’ 창출
CBDC 모델은 은행 예금의 일부를 중앙은행 당좌계정에 바로 접속 가능한 디지털 현금으로 전환시켜 지급결제 시장에서 은행 스프레드(예대마진) 를 잠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파일럿처럼 은행을 ‘토큰 발행 인프라’로 포지셔닝 하면,
- API 기반 수수료·스마트 바우처 정산 서비스 등에서 신규 수익을 얻을 수 있고,
- CBDC 결제 데이터를 활용한 고신용·초단기 여신 상품 설계가 가능하다.
BIS 2023 Survey 결과, 전 세계 중앙은행의 94%가 CBDC를 검토 중이며 그중 도입 시점은 ‘도매 CBDC’가 소매형보다 빠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우리 은행권이 국제 지급결제 경쟁에서 ‘인프라 사업자’ 로 진화할 기회를 시사한다.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글로벌 비교 : 한국·중국·EU CBDC 파일럿 현황
국가 | CBDC 유형 | 단계(2025.4) | 참여 범위 | 누적 거래규모/참여자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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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기관용+예금토큰(하이브리드) | 파일럿 (’25 Apr–Jun) | 7개 은행·10만명 | 한도 기반 실험 | 실시간 정산·QR |
중국 | e-CNY(리테일) | 확장 파일럿 | 17개 성·2억+ 지갑 | 7조 e-CNY(’24 Jun) | 오프라인 결제·웨어러블 |
유로존 | 디지털 유로(리테일) | 기술 시험 | 20개 상업은행·소규모 | 비공개 | 단계적 법제화 |
기술·보안 과제와 정책적 고려사항
- 거래 프라이버시: AML·KYC 규칙과 개인 데이터 보호법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며, 한국형 DID(분산 신원) 표준과의 연계가 필수다.
- 사이버 리질리언스: 분산원장 합의 알고리즘(PBFT 변형)과 레가시 RTGS 시스템 연동 구간에서 지연(latency)과 단일 실패점(SPOF)을 줄이는 ‘하이브리드 아키텍처’가 요구된다.
- 거시건전성: CBDC 실시간 결제의 ‘예금 이동 속도’가 높아지면 뱅크런 위험이 가시화된다. 한국은행은 예금 토큰 보유한도·결제한도 를 설정해 유동성 충격을 완충하고, 필요 시 차등지급준비율 조정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 법제화 로드맵: 전자금융거래법·특정 금융정보법 개정안에 CBDC·토큰예금 정의를 명기하고, 향후 스테이블코인·코머셜 토큰 과의 규제 대칭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134개국이 CBDC를 연구 중이며, G20 19개국이 고도 단계(개발·파일럿·출시)에 진입했다. 기술 표준을 둘러싼 프로젝트 mBridge·Agorá 등 다국간 협력이 급증하고 있어, 한국형 기관용 CBDC가 글로벌 상호운용성 테스트베드로 활용될 경우 원화 기반 크로스보더 지급결제 시장 진출 가능성도 커진다. Atlantic CouncilReuters
결론 : ‘은행 무용론’이 아닌 ‘금융 인프라 혁신’
CBDC가 ‘은행을 몰아낸다’는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오히려 은행은 토큰화된 예금·스마트 계약 기반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인프라 사업자로 재정의될 수 있다.
이번 한국은행 기관용 CBDC 실험은 ①도매 결제망의 비용 절감, ②소매 결제의 실시간화, ③금융 데이터의 프로그래머블화 를 동시에 시험하는 ‘하이브리드 모델’로서,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파일럿이다.
실험 결과가 성공적으로 검증된다면 2026년 이후 대규모 상용화 로드맵이 구체화될 전망이며, 향후 블록체인 기반 정책지원금·탄소배출권 결제 같은 공공혁신 서비스로 확장될 가능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