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가 왜 중요한가

가상자산이 투기적 열풍·폭락 사태를 반복하면서도 하나의 투자 자산으로 자리 잡은 지금,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 주권 보호와 금융 혁신을 동시에 달성할 수단으로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134개 국가‧통화권(세계 GDP의 98%)이 CBDC를 연구·도입 단계에 놓여 있으며, 44개국은 이미 파일럿 단계에 진입했다는 Atlantic Council의 집계는 ‘현금 없는 경제’로의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보여 준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통화는 ①기존 민간 가상자산의 가격변동·신용리스크를 제거하고 ②실시간 결제·정산으로 금융시스템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며 ③소액결제 데이터 기반의 정밀한 통화정책을 가능케 한다. 반면 ‘중앙은행이 개인 결제정보를 모두 들여다보는 것 아니냐’는 사생활 침해 우려, 기존 시중은행 예금 유출 가능성 같은 해결 과제도 뚜렷해 제도 설계의 정교함이 요구된다.
‘프로젝트 한강’ 설계와 일정
한국은행은 2025년 4월 1일∼6월 30일 10만 명을 대상으로 리테일 CBDC 시범 사업 ‘프로젝트 한강’을 가동했다. 7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부산은행)이 사용자 지갑을 운영하고, 한국은행은 기관용 CBDC를 이들 은행에 공급한다. 사용자는 자신의 은행 예금을 ‘예금 토큰’으로 전환해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QR·바코드 결제로 사용하며 1인 최대 100만 원, 테스트 기간 총 500만 원의 전환 한도가 부여됐다.
한국은행은 해당 구조를 “CBDC+은행 스테이블코인 병행 모델”이라 규정하며, 개인정보는 은행에서만 처리해 중앙은행이 직접 보관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했다IT세상을 바꾸는 힘 지디넷코리아. 1단계가 마무리되면 2단계에서 P2P 송금과 지자체 바우처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추가하고, 최종 보고서를 토대로 실제 도입 여부를 2026년 상반기 결정할 예정이다.
첫 달 사용 데이터로 본 이용 행태
4월 1∼20일 동안 개설된 전자지갑은 51,766개, 누적 결제 건수는 29,251건이었다. 거래가 집중된 업종을 보면 배달앱(‘땡겨요’)이 80% 이상을 차지했고, 편의점·커피숍·온라인 서점이 뒤를 이었다서울경제IT세상을 바꾸는 힘 지디넷코리아. 특히 신한은행은 디지털 포인트 지급·배달 할인 이벤트를 앞세워 할당 인원(1만6천 명)을 가장 먼저 채우며 플랫폼 친화적 고객층을 흡수했다. 결제 승인 평균 속도는 1.9초로, 동일 조건의 신용카드(평균 2.4초) 대비 20% 가까이 빨랐다.
결제 실패율은 0.08%에 그쳐 기술적 안정성도 확인됐다(한국은행 결제보고서 사전 브리핑 자료). 다만 ‘예금 잔액을 토큰으로 임의 전환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가맹점 수 부족’이 불편 요소로 꼽혔고, 일부 사용자는 “결제 UX가 기존 간편결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차별성이 약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향후 정식 도입 시 자동 전환형 지갑·NFC 오프라인 결제 지원 같은 사용자 경험 개선이 필수임을 시사한다.
글로벌 CBDC 추진 현황 비교
아래 표는 주요국 추진 상황을 요약한 것이다.
국가·지역 | 추진 단계(’25.4월) | 사용자 범위·규모 | 최근 진척 내용 | 특징 |
---|---|---|---|---|
한국 (프로젝트 한강) | 리테일 파일럿 | 10만 명, 7개 은행 | 지갑 5.1만 개·결제 2.9만 건(4/20 기준) | ‘예금토큰’ 병행 모델 |
중국 (e-CNY) | 확대 파일럿 | 3.6억 명 등록 | 누적 거래 7조 위안(약 $987 B) | 대규모 오프라인·교통 요금 결제 |
유로존 (디지털 유로) | 준비 단계 | 다국적 | 2024Q4부터 2년간 설계·개발 착수 | 공공-사설 이원 구조 |
인도 (디지털 루피) | 리테일 파일럿 | 150만 명 | 2025년 전면 도입 검토 | UPI·QR 연계 |
나이지리아 (e-Naira) | 정식 출시 | 전 국민 | 월간 활성지갑 420만 개 | 모바일 머니 통합 모델 |
미국 (Fed “digital dollar”) | 연구·소규모 실험 | 기관 중심 | mBridge 크로스보더 프로젝트 참여 | 사생활 보호 논쟁 |
자료: Atlantic Council CBDC Tracker, 각국 중앙은행·언론Atlantic CouncilReuters
표에서 보듯 리테일 CBDC를 공식 출시한 국가는 아직 소수지만, 경제 규모가 큰 중국·인도가 대규모 시험을 진행 중이고 EU·일본·브라질 등도 잇달아 법적·기술적 준비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예금토큰’이라는 상용 결제수단과 CBDC를 연동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채택해, 세계 최초 민·관 이중 토큰 구조라는 차별점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와 향후 과제
첫째, 결제 인프라 비용 절감. 실시간·직접 결제 정산 구조가 정착되면 카드 수수료·밴(VAN) 수수료가 최대 30%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한국은행 추정치가 나왔다. 둘째, 정책 전파력 강화. 특정 산업 쿠폰·재난지원금을 CBDC로 지급하면 잔액 관리와 부정 사용 방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어, 지자체에서 이미 장학금·문화패스를 예금토큰으로 실험 중이다IT세상을 바꾸는 힘 지디넷코리아. 셋째, 데이터 기반 미시 통화정책. 익명성 보호 하에서 소비 지출 패턴을 실시간 파악하면 금리·유동성 조절의 미세 조정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과제도 크다. ① 대규모 사이버 보안 체계 구축, ② 시중은행 예금 이탈 방지를 위한 이자 미지급·잔액 한도 설계, ③ 민간 결제·핀테크와의 공존 모델 정립, ④ 법·제도(전자금융거래법 등) 개정을 통한 법적 화폐성 확보, ⑤ 국제 상호운용성 확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디지털 섀도 보도권’ 우려를 해소하려면 프라이버시 보존형 제로지식증명(ZKP) 활용 같은 기술적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