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 지도 업데이트

세계는 이제 ‘파일럿 단계’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는 너무 복합적인 CBDC 실험장을 품고 있다. 2025년 2월 기준 **134개국(세계 GDP의 98 %)**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검토하거나 추진 중이며, 이 가운데 66개국이 ‘개발·파일럿·출시’라는 고도화 단계에 진입했다. 특히 파일럿이 44개국, 정식 출시국은 나이지리아·바하마·자메이카 3개국이다.
G20 국가 전원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 13개국은 실제 테스트 결제 네트워크를 가동해 교차 국경 지급 결제 데이터를 수집 중이다. 이러한 확산 속도는 2020년 5월 35개국이 초기 탐색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4년 만에 280 %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리적으로는 중국과 BRICS 권역, 유럽(디지털 유로), 중동(UAE·사우디) 등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미국은 행정부의 ‘디지털 달러 금지’ 행정명령 이후 민간 스테이블코인 의존도가 커지는 양상이다.
추진 단계 (2025.4) | 국가 수 |
---|---|
정식 출시 | 3 |
파일럿 | 44 |
개발(코드·인프라 구축) | 19¹ |
연구(정책·타당성) | 68 |
중단 | 17 |
취소 | 2 |
¹고도화 단계(66) 중 파일럿·출시국을 제외한 추정치
IMF·BIS 프레임워크 현황
CBDC 논의를 국제 표준으로 끌어올린 주체는 IMF와 BIS다. IMF는 2025년 4월 ‘CBDC Virtual Handbook’를 최신화하면서 ▲금융안정성 ▲자본흐름 관리 ▲사이버 복원력 ▲데이터 보호 등 9개 주제별 모듈을 제공한다. 핸드북은 ‘5P(Product·Policy·People·Process·Partnership)’ 방법론을 통해 정책 목표 설정부터 파일럿 운영, 출시 후 모니터링까지 전 주기를 설계하도록 안내한다.
BIS 역시 2024년 1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CBDC·초고속 지급결제(FPS)는 상호 보완재”**라며, 인프라 공동 활용과 상호 운용성 확보를 권고했다. 보고서는 14개 중앙은행 인터뷰 결과를 근거로, FPS 선 구축→CBDC 병행 모델이 비용 효율과 채택률을 동시에 높인다고 강조한다. 두 기관 모두 프라이버시·AML/CTF 규제 정합성을 최우선 리스크로 꼽으면서, ‘설계 단계부터 개인정보 최소 수집 원칙’을 내재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e-CNY 성과와 성장
중국은 모바일 결제 보급률 88 %라는 독보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2022년 말 25개 도시에서 e-CNY(디지털 위안화) 공개 시범을 시작했다. NFC 오프라인 결제와 ‘하드월릿’(SIM·IC카드 기반)처럼 인터넷 불안정 지역에서도 작동하는 기능 덕분에 사용성이 빠르게 확산됐다. 2023년 6월 누적 거래액이 1조8,000억 위안을 돌파한 뒤, 2024년 6월에는 **7조 위안(약 9860억 달러)**으로 1년 만에 4배 성장했다. 2025년 들어서는 홍콩·싱가포르 관광 결제, 원유·금속 교차결제, 지방정부 교통·공공요금 할인 등 응용 서비스가 늘며, 다층 생태계 확장을 모색 중이다. 다만 ▲민간 간편결제(알리페이·위챗페이) 대비 인센티브 부족 ▲프라이버시 우려 등으로 월간 활성 사용자(MAU)가 거래액 대비 더디게 늘고 있다는 점은 해결 과제로 지적된다.
구분 | 2023.6 | 2024.6 | 전년 대비 |
---|---|---|---|
누적 거래액(兆 위안) | 1.8 | 7.0 | ▲288 % |
참여 도시(개) | 25 | 28 | +3 |
지자체 공공요금 결제 지원률 | 55 % | 78 % | +23 %p |
국가별 추진 단계 비교
고도화 단계 66개국을 살펴보면 선진국은 B2B·도매형(Wholesale), 신흥국은 소매형(Retail) 중심이라는 양극화가 두드러진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5년 말까지 디지털 유로 법제 초안을 확정할 예정이며, 영국은 ‘디지털 파운드’ 논의 속에서도 ‘민간 혁신 우선’이라는 양면 전략으로 접근한다. 반면 브라질·인도는 현지 FPS(Pix·UPI)와 연계해 금융포용을 강화하고,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송금 수수료 절감을 목표로 중앙은행 주도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파일럿 중인 44개국 가운데 절반 이상이 오프라인 결제 기능을 우선 탑재하고 있으며, 이는 전력·통신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서 현금 대체 수단으로 CBDC를 자리매김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다만 17개국이 프로젝트를 중단한 배경에는 ▲정치권 반대(미국·아르헨티나) ▲예산·인력 부족 ▲사이버 보안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결제 시장이 기존 카드 네트워크·빅테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고려할 때, 각국 중앙은행은 ‘역할 재정의’와 민간 참여 인센티브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정책적 시사점
첫째, 금융포용: IMF 핸드북은 ‘현금 접근성 저하’가 빠른 신흥국일수록 소액·오프라인 결제에 특화된 설계를 권고한다. 둘째, 거시경제 안정성: CBDC가 예금 대체를 야기할 경우, 이자 미부여·보유 한도 설정이 필요하다. 셋째, 사이버 복원력: BIS는 다계층 키 관리, 하드월릿, 분산형 백업을 필수 요소로 제시한다. 넷째, 프라이버시: 익명성 보장을 위한 ‘계층적 KYC(거액 거래에만 실명 인증)’ 모델이 국제 표준으로 부상한다.
마지막으로, 국제 공조: mBridge·Project Agorá 등 다국간 도매 CBDC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국경 간 상호 운용성(ISO 20022 메시지, DLT 인터페이스 규약)이 통화 패권 경쟁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한국 역시 올해 안에 BOK 디지털화폐 2단계 시범 결과를 토대로 소매·도매 병행 모델을 공식화할 예정이어서, 정책 당국과 산업계가 시의적절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